썰/삶의미각

금요일을 향하는 새벽에

uoooooc 2013. 3. 29. 05:08

금요일을 향해가는 새벽이다.

수요일은 1,2,3,4,5,6으로  오후 세 시경이면 몸의 진액이 바작바작 마르는 듯하다.

귀가하면 바로 쓰러져 운기조식(?)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듯 신체적 스트레스가 커다보니 수요일의 휴유증은 목요일까지 남아있다.

작년에는 스물두시간으로 1,2,3,4,5,6이 있었지만

별다른 업무가 없었으니 사실 가장 편한 시기였고 나를 위한 안식년이라고 위안한 때였다.

시간에 관한 한 재작년이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을 작년은 그렇게 밖에 할 줄 몰랐다.

누구는 18, 심지어는 15까지 있음에도. 15와 22, 말이 되나? 그렇게 밖에 조정할 줄 모르다니.

그것은 내가 작년의 것을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무능력함이 아니던가.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 나는 인간의 행태 중에서 안하는 것은 밉지만 못하는 것은 싫더라.

작년은 무능했고 금년은 몰라서 안하는 것인 듯한데 그에 관한한 더이상 재하지 않았다. 

작년과 재작년의 내 상황은 거의 똑 같았는데도 작년은 3이고 금년은 1급이니 이 또한 웃기지 않은가.

당시에 그 판을 누가 만졌던가. 만지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이렇게 될 수 있음을 안다. 

배려할 줄 아는 것과 배려할 줄 모르는 것 역시  능력과 무능력의 결과라고 여겨진다.

군자는 소인을 알아보지만 소인은 군자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은 그릇은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작년에는 그 결과와 과정을 즐겼다. 아아 이런 것이 삶의 유희인가 싶어서.

재작년과 작년에는 내도록 내심 철저하게(철저하다는 표현이 맞다은둔을 했는데, 이런 결과에 실로 웃음이 난다.

어쨋든 작년의 결과는 내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탓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위치로 끌어 올려준 분은

오히려 내게 미안했고 미안하다고 한다. 아침마다 지각을 하고 자주 나돌아도 웃는 낯으로 참아 주시고

불쑥 일삼는 내 방만을 짐짓 모른 척 하셨는데 가끔 왜 그럴까하고 생각을 해 보건대, 아마도 나의 근간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가는 제대로 돌아오겠지하는. 나 역시 이 일에 대한 양심이 있어서, 금년들어 처음으로 수요일에 이어

목요일인 어제는 예전처럼 홀로 앉아 일을 했다.

 

목요일 밤, 그래 밤이다. 밤 열시 경까지 일을 하다가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캄캄한 밤 속에 찬바람이 분다.

차를 향해 걸어가면서 그리고 차 문을 열면서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 보았다.

달, 또 달타령을 하는구나. 오늘 밤의 저 달은 작네, 어제보다. 그리고 어제와는 다른 빛이네. 오늘은 주황색으로 무척 붉다?

어제 밤의 달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그 남자 애를 묵묵히 지켜보았겠지.

운전하며 집으로 향하는 동안 심장이 아팠다. 나는 수시로 심장이 아파 못 견뎌했는데, 그 남자 아이는 갉아먹힌다고 하는구나.

어쩌면 그 애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달을 보면서 뛰어내렸을지도 몰라.

사실 나는 어제 밤에 그 아이가 원인이 된 채 지독하게 우울하고 슬퍼서

그리고 가여워서 그리고 그리워서 집에 들어서자 마자 드러누웠다.

머리가 심장을 갉아먹어서 버티기 힘들다는 그 아이. 아아, 대체 어쩌란 말인가. 나는 눈을 감았다.

방 한 칸에서는 형광불빛이 새어 나오고, 거실의 불은 끈 채.

'시달림,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실존을 잊은 채 이렇게 부유하고 있구나 '

 

그러다가 잠결에 들리는 어떤 소리에 눈을 떠서 지금 깨어 있다.

이성과 감성은 실존의 경계에서, 여명에 눈을 가늘고 뜨거나 감으면서 떠다니고 있다.

얇고 작은 노끈이 매달린 그 사진,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라는 노랫말에 그가 그랬다.

너 왜 그러니, 섬뜩하고 걱정이된다고 했던가. 염려마라. 그것은 사의 찬미가 아니다.  내게 그것은 역설이지. 삶에의 지독한 예찬일지도 몰라.

 

금요일은..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