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수줍은 일로 얼굴이 붉어진다고 했다. '자주 붉어지면 곤란해, 왜냐하면 난 선비의 피가 흐르니깐' 그리곤 웃는다. 이건 간 밤의 꿈이다. 꿈에 종종 등장하는 것은 왜일까. 아침 출근길에 오만과 편견을 들으면서 엷게 웃음이 나왔다. 여전히 제 목소리가 듣기 좋은가요? 상쾌한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밝은 음성. 10월27일 이후, 오늘에 이르러 실감하는 즈음, 그래도 이 독서는, 천재의 말소를 망각하고 나를 잠시 웃게 한다. 출퇴근길은 '가늠하기 위한 눈'을 반쯤 뜨게하고, 천재에게 집중하게 한다. 출퇴근길의 응시와 집중은 아무리 오래가도 지겹지도 두렵지도 않다.
오늘은 오후 5시쯤에 문을 나섰다. 이렇게 일찍 나서는 날도 있구나. 차에 오르자 앞유리창에 방울이 되어 맺혀있던 것이 시동을 거는 순간, 얇은 얼음이 되어 미끌어지고 있었다. 허공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빗물과 얼음알갱이. 진눈깨비? 이것을 진눈깨비라고 하는구나. 마음의 소요가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고 밤에 또 다르다. 오늘 이 시간, 나는 마음을 결정한다. 한달이면 기름값 대신 약 30만원을 마련할 수 있다. 이것이 이유가 되어, 가닥을 잡기로 한다. 삶은 낭만도 추상도 아닌 것을. 시달리는 천재들에겐 예술이 궁극이 아니라, 생활이 시급할 뿐인것을. 이것은 현실이고 사실이고 구체적인 삶이다.
짙은 연무에 황홀, 매혹을 끝내고 이제는 머물지 말고 뚫고 지나가야 하겠지. 지금으로선 이 결정이 최선이며, 비로소 고요해 질 수 있겠다. 진눈깨비가 끝나는 지점 그리고 독서도 함께 끝나는 무렵 당도한 주차장에서 나는, 핸들에 턱을 얹고서 전신주에 달린 붉은 등을 오래 올려다 보았다. 그래. 건강하게 기다릴 일이다. 천재에게 놓아주는 운명의 다리를. 그러나 얽히지않을 것을 맹세했음도 늘 기억해야만한다. 그저께는 글을 보여주며 뭔가 말을 하였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의 배면은 내 자존의 명과 암을 극명하게 오가게 한다. 알면 알수록 천재임을 확인할 뿐이다. 이로인한 시달림은 마치도 추억의 공동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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