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식으면
여자는 옛날로 돌아가고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간다.
라고 괴테는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괴테가 잘 모르고
한 말일 뿐이다.
이미 사랑을 알아버린 여자가
어떻게 과거로 돌아가겠는가.
다만 여자는
이번만은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기다리는 것이다.
남자는
계속 여러 여자를 만나면서 여자를 알아가지만
여자는
단 한 남자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주고 싶을 뿐이다.
옛날로 돌아간 게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여자가
이번만은 섣불리 사랑을 시작하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할 그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신중해진 것일 뿐이다.
여자는 항상 꿈꾼다.
그녀가 진실로 사랑할만한 남자를..
여자는 남자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녀가 사랑하는 단 한 남자를 알고 싶을 뿐이다.
여자는 과거를 연연하지 않는다
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앞선다.
그래서 과거의 옛 사랑이 와도 받아주지 못하는건.
지금 현재의 사랑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
고로 여자는 남자가 떠나지 않는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킨다.
/ 좀 전에 모동호회 싸이트에서 학교 동기를 발견했고, 그가 올린 이 글을 읽었다. 몇 십년만이던가.
출처를 모르는 글이라서 뉘글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당시에 이 글을 대한 그 친구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후 세월이 너무 많이 흘렀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은 사람은 필경 자기 가슴에도 큰 못이 박히게 됨을.
그 인과를 예감하며 사람은 몸이 부르르 떨릴 때가 있을 것이다.
내 경우 나를 사랑한다고 한 사람을 내가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만 좋아했다.
그 시절의 나는 무엇에 홀렸었나보다. 내게 등을 보이고 뚜벅뚜벅 앞서가는 초인같은 사람의 뒤를 따르고 싶었으니까.
결국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내가 가까이 갈 수 없는 위치에 있거나, 도통 여인들에게는 관심이 없는 어떤 사람을 연모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이소룡이라든지, 조만간 신부가 될 선배라든지,
찬바람이 쌩쌩부는 냉소주의자로 가난조차 빛나게 해주는 지적, 예술적으로 지독하게 오만한 아우라를 가진 某.
이렇듯 비현실적인 이성관을 가지고 있던 그 시절에, 가끔 누군가들이 내게 고백이란 것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누군가들의 속성은 대체로 사람의 생각을 구속하고 집착하려하고, 까닭모를 폼을 잡아서 유치함을 배가하곤 하였다.
혹은 입술색이 너무 빨갛다는 둥 옷차림이 어떻다는 둥 외양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하고
어떻게 하든지 약속시간을 만들어 함께 있으려 애쓰는 꼴이라든지 어디든 함께 갈려고 한다든지
마음에 들지 않는 글씨체로 일방적인 편지질을 한다든지 코드가 맞지 않는 내용의 글을 빽빽히 써서 마음대로 부쳐온다든지
데이트 한 번에 별난 모드로 나온다든지. 미래를 함께 하고싶다고 심각한 목소리와 표정을 짓는다든지.
그러면 나는 속으로 아연실색을 하곤 했다. 아이, 뭐가 이래? 이러면서 속으로 짜증이 나는 것이다. 나는 이 짜증을 스스로 못 견뎌했다.
이부분까지 쓰다가 내가 우스워서 스스로 웃는다. 왜 웃는지 이 글줄을 읽는 사람은 알까몰라. 아무튼.
당시에 나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을 날 것 같지 않은 몰인간적인 분위기가 있기도 했고 순수,순진하고 결고은 이미지도 있었을 것이다.
무색무취에 일방적인 사고를 할 뿐인 누군가들을 두번 이상 보아야함은 진저리나게 싫었고
누구든 팔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얹으려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정이 떨어졌는데, 결벽증이라기보다 결-병증이라고 해야할까.
어쩌다 무거운 고백을 받게 되면, 구토증과 함께 온 몸이 뻣뻣해지면서
어떻게 하면 그 자리에서 벗어날까만을 궁리했다.
그 자리에서 마지막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사라질 뿐이었다. 이후에 두 번 다시 만나지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돌이켜본다면, 그들은 아마도 나를 사랑했다기 보다도 자신들의 청춘을 사랑했을지 모르겠고, 자신의 사랑법에 집착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에는 크든 작든 자신의 심정을 다쳤을것이다.
상실이랄까.
흔적없이 사라진다거나 상대를 강력하게 거절했을때
거절당한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잘 안다.
누군가에게 내가 나열하고 있는 이 허섭한 글줄이 읽혀진다면, 조롱거리가 될 수 있음도 잘 안다.
그러나 나는 취했다. 연기나 술따위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는, 내게 순수했던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준 사람이기도 하고, 이후에 나 또한 아프다. 인과, 그 다음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오늘 이상하지. 잠시 후면 후회할 글줄을 마구 나열하고 있단 말이지. 이 곳은 우연히 왔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호기심의 일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상한 공간. 일기도 아닌 것이. 생활문도 아닌 것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것인지.
나에게 과거 현재 미래가 있음을 확인하고자 함인지.
사랑이 어쩌고 저쩌고......
궁극은 희망을 기원하는 내용인데, 생각하건대 상식적이고 교과서적이지 않은가.
희망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겐 감상같은 것.
희망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식,이해, 적용, 감상 영역 중에서 적용이 아닌 감상으로 제출할 수 밖에 없는 공허한 시험답안 같은 거.
그래도 착하고 순수했던 그 시절의 누군가,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지금 따뜻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내 눈이 새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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