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노랑과 황금색의 색조 그라데이션과 기氣가 충만한 짧은 수직의 반복, 아래에서 위로 올려긋는 선들의 무한.
그 곳의 한 복판에 서 있던 흰 옷을 입은 허수아비는 결곡한 성미를 가진 주인농부의 모습같다.
급한 걸음으로 내달리다가 먼 곳의 장면이지만 순식간에 가슴에 들어오길래, 사진을 찍어서 지금 들여다보는데
조물주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찬탄할 만한 황금빛의 색조에 고개숙인 흰색의 배색에 심정이떨린다.
나는 울긋불긋 현란하게 물든 가을 풍경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기보다, 저런 장면 속에 포함되어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노란색은 광인의 색, 천재의 색, 우수와 신비의 색. 몽환의 색. 수면의 색.
불현듯 생각나는 천재들이 있는데, 그들은 대체로 연민과 동정에 목숨을 건다.
그로 인해 죽음으로까지 닿지않던가.
그들의 연민과 동정의 대상은 궁극에는 자기애愛이지 않을까. 모든 원인과 결과의 시작과 끝은 자기 자신이니까.
니체,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왜 이렇게 똑똑한가.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책을 쓰고 있는가. 슬쩍 웃음이 난다. 그래 맞아요.
그리고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는데,
이 천재는 연민에 미쳐 버린 사람이 아닐까 몰라.
나역시 이 연민의 심정때문에 종국에는 괴물이 아니라 고물이 될 지경일라.
이 한 장의 아련한 사진을 두고도 생각이 이러할진대
일생동안의 기억의 잔상들은 망각되어지지 않고 종일토록, 생애 내도록 온갖 시달림을 준다.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손바닥에 금이 그어져서 내 얇은 손바닥은 온갖 금투성이다.
흰 옷 입은 허수아비에 대한 연민과 이해, 아무에게나 청할 수 있는 이해는 아니다.
이 장면에 대한 생각을 모티브로 까마귀떼가 날으는 밀밭의 비장은 아니더라도
생의 연민 속에 존재하는 결곡한 자존을 표현함이 지금의 희망이다.
글이 쥐죽박죽이다. 안돌아간다. 머리가 굳었다. 오장육부가 굳어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다.
지금 심정으로는 수년간의 시달림에 의한 탕진의 결과라고 핑계를 대고 싶다.
'썰 > 삶의미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근길에 신호등 (0) | 2012.10.15 |
---|---|
치사량 바로 아래의 적당량 (0) | 2012.10.15 |
채송화 (0) | 2012.10.13 |
지겹다 (0) | 2012.10.12 |
오늘도 내일도 푸른 하늘 (0) | 2012.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