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로 접어들었고 토요일이다.
이것 저것 하다가 이 시간까지 커피마시다가 들었다 놓았다가 크림빵 먹다가 집안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다가.
낮이 피로롭기 짝이 없었음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제 역시 낮잠이란 것을 자지 않았건만, 새벽 6시에 잠시 잤다가 알람도 없이 7시에 깨어나서 출근하였다.
봄비라고 하는가. 축축하게 비는 오고, 종일 이 도시는 빗물에 젖어 있었던 어제였고,
오전부터 퇴근까지 내도록, 해결하고 완성하고 마무리해야 할 의무감때문에,
그 압박감으로 종일 불안한 마음으로 시달려야했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퇴근시간이 되어, 빗길을 느리게 운전하여 우체국 앞에서 멈추었다.
참으로 차 안에서 오래 있었다. 망연하고 자실한 채.
살아오면서 이렇게 난감한 적이 있었던가.
이 고립감. 아무리 뒤져도 더 이상은 나오지 않는.
빈 종이의 삑삑거리는 공허한 소음에 주저앉고만 싶었다.
설마 내가 무너지겠는가. 설마 내가 ...
저녁에 만나게 된 지인의 눈은 얼마나 깊숙하게 내 눈을 뚫고 들어오는지...
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눈빛이 어두워요라고 그녀가 말을 하는 바람에 눈이 빨개지지 않으려고 공연히 눈꼬리를 잡고 댕기고 올리고 하였다.
돌아오지 않는 강.
이 노래, 돌아오지않는 강이라고, 마릴린 몬로꺼도 있지만.
내 스무살에 이것만을 줄창 부르던 선배가 있었다.
스스로' 창백한 고흐'라고 칭하며 가난과 고독으로 창백하게 그림과 미학에 몰입하던 사람이었다.
전공은 불어지만 도내 모여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며, 미술반 동아리를 자청하여 미술교사로도 활동하였다는데.
우리가 신입생일때 그는 2학년이었는데, 겨우 한 살 차이임에도 현실과는 거리가 먼 예인의 위엄과 진지함에 후배뿐만 아니라 한참 위의 대선배님들 조차도
색다르게 인정했던 것 같다.( 그 시절 경포바닷가에서 바다를 채색하는데, 파스텔의 푸른색 녹색을 알아보지 못하고 재료탓만을 하는 것을 의아해하는 중에
그가 고백하였다. 그때 알았다. 색맹이었음을.) 색맹으로 미술을 전공하지 못하고 불문학을 전공했으며, 그림이 좋아 써클활동을 하게 되었음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작품 품평회때 막걸리를 마시고 띄엄띄엄 울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던 사람.
참 가난한 사람이 많았던 그 학교였다.
유난히 창백하고 바싹 마른 얼굴, 얇은 잆술, 며칠이고 감지않아서 떡진 기다린 머리, 가난한 청춘 사이로 미학과 철학을 궁구하던 그의 스물한살.
도대체 그림이 뭐길래.
내 일학년 여름, 써클 MT때 소백산 종주를 했는데, 비로봉인가 어느 암자 근처에서 다들 텐트잠을 자고
새벽에 눈비비고 텐트밖으로으로 나왔을 때 그 날 처음 본 장면은,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오줌을 누면서 저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그 선배의 뿌옇고 기다란 실루엣.그리고 심장을 쥐어짜듯 내지르는 저 노래였다.
운무가 가득한 이른 새벽에, '돌아오지않는강'을.. 그 이후에도 종종 저 노래를 불러댔는데. 보통은 텅 빈 공간, 텅빈 복도라든지...기다란 길을 걸어가면서.
다들 졸업하고 나도 졸업하고,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동호회의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은.
그 선배는 결혼을 했고, 지금 내가 사는 이 중소도시. 이 곳의 가장 높은 아파트에서 투신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강을... 그는... 건넌 것인데.
돌아오지 않는 강이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소식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궁극적으로 왜 그랬는지 알 수없는.
이것 저것 하다가 이 시간까지 커피마시다가 들었다 놓았다가 크림빵 먹다가 집안 여기저기를 왔다갔다하다가.
낮이 피로롭기 짝이 없었음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제 역시 낮잠이란 것을 자지 않았건만, 새벽 6시에 잠시 잤다가 알람도 없이 7시에 깨어나서 출근하였다.
봄비라고 하는가. 축축하게 비는 오고, 종일 이 도시는 빗물에 젖어 있었던 어제였고,
오전부터 퇴근까지 내도록, 해결하고 완성하고 마무리해야 할 의무감때문에,
그 압박감으로 종일 불안한 마음으로 시달려야했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퇴근시간이 되어, 빗길을 느리게 운전하여 우체국 앞에서 멈추었다.
참으로 차 안에서 오래 있었다. 망연하고 자실한 채.
살아오면서 이렇게 난감한 적이 있었던가.
이 고립감. 아무리 뒤져도 더 이상은 나오지 않는.
빈 종이의 삑삑거리는 공허한 소음에 주저앉고만 싶었다.
설마 내가 무너지겠는가. 설마 내가 ...
저녁에 만나게 된 지인의 눈은 얼마나 깊숙하게 내 눈을 뚫고 들어오는지...
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눈빛이 어두워요라고 그녀가 말을 하는 바람에 눈이 빨개지지 않으려고 공연히 눈꼬리를 잡고 댕기고 올리고 하였다.
돌아오지 않는 강.
이 노래, 돌아오지않는 강이라고, 마릴린 몬로꺼도 있지만.
내 스무살에 이것만을 줄창 부르던 선배가 있었다.
스스로' 창백한 고흐'라고 칭하며 가난과 고독으로 창백하게 그림과 미학에 몰입하던 사람이었다.
전공은 불어지만 도내 모여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며, 미술반 동아리를 자청하여 미술교사로도 활동하였다는데.
우리가 신입생일때 그는 2학년이었는데, 겨우 한 살 차이임에도 현실과는 거리가 먼 예인의 위엄과 진지함에 후배뿐만 아니라 한참 위의 대선배님들 조차도
색다르게 인정했던 것 같다.( 그 시절 경포바닷가에서 바다를 채색하는데, 파스텔의 푸른색 녹색을 알아보지 못하고 재료탓만을 하는 것을 의아해하는 중에
그가 고백하였다. 그때 알았다. 색맹이었음을.) 색맹으로 미술을 전공하지 못하고 불문학을 전공했으며, 그림이 좋아 써클활동을 하게 되었음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작품 품평회때 막걸리를 마시고 띄엄띄엄 울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던 사람.
참 가난한 사람이 많았던 그 학교였다.
유난히 창백하고 바싹 마른 얼굴, 얇은 잆술, 며칠이고 감지않아서 떡진 기다린 머리, 가난한 청춘 사이로 미학과 철학을 궁구하던 그의 스물한살.
도대체 그림이 뭐길래.
내 일학년 여름, 써클 MT때 소백산 종주를 했는데, 비로봉인가 어느 암자 근처에서 다들 텐트잠을 자고
새벽에 눈비비고 텐트밖으로으로 나왔을 때 그 날 처음 본 장면은,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오줌을 누면서 저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그 선배의 뿌옇고 기다란 실루엣.그리고 심장을 쥐어짜듯 내지르는 저 노래였다.
운무가 가득한 이른 새벽에, '돌아오지않는강'을.. 그 이후에도 종종 저 노래를 불러댔는데. 보통은 텅 빈 공간, 텅빈 복도라든지...기다란 길을 걸어가면서.
다들 졸업하고 나도 졸업하고,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동호회의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은.
그 선배는 결혼을 했고, 지금 내가 사는 이 중소도시. 이 곳의 가장 높은 아파트에서 투신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강을... 그는... 건넌 것인데.
돌아오지 않는 강이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소식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궁극적으로 왜 그랬는지 알 수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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