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둣빛 초봄의 오후
나는 꽃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랬더니 꽃잎 하나가 내려와서는
내 왼 몸을 안아보고서는 가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입술이며 이마를 한없이 부비고 문지르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손톱 끝의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하여 어느덧 한 세상은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있었다.
인연설 / 문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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