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아침, 유기농이라면서 귤 한 상자가 배달되어 왔는데, 저 둘은 귤더미 속에서 내게 발견되어졌다. 감탄을 하면서 내 눈은 동그래졌다. 사람들 손틈에서 달팽이가 멸滅될까봐 둘 다 데리고 와서 한참 들여다보다가 오랫동안 방치된 채 꺼내지 않았던 카메라를 꺼냈다. 작은 땅콩 크기만한 달팽이는 노란 귤 위에서 돌아앉기도하고 귤의 몸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던 중 내게 두 컷 찍혔고 그 중 한 장면이다.
책상의 책꽂이 위에 올려두고 쉬는 시간마다 짬짬이 들여다보면서 홀로 저 생물체의 命을 염려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광등 불빛과 실내의 소음들로 저 작은 놈은 잔뜩 겁먹을텐데. 달팽이 뿐일까. 노란귤의 세포 하나하나도 그렇듯 움찔거리지 않았을까. 자신의 즙과 물기를 잔뜩 가지고 있으나 달팽이에겐 아쉽기만 한 귤, 찰라겠지만 달팽이는 귤 때문에 살아내고 있음을. 수분없이는 살 수 없는 달팽이와 귤, 그들 두 연緣의 겉돌기.
바깥 날씨는 너무 추워 내다놓으면 얼어버릴 것 같고, 실내는 히터때문에 수분이 말라버릴 듯하고. 저걸 어찌하면 좋을까하고 생각만하다가 당장 급한 일상인 4층, 3층을 오르락 내리락거리며 4시간을 끝내고. 돌아와서 들여다보니 귤은 다른 장소에 혼자 있고 달팽이가 없다. 그동안 누군가가 건드린 듯하다. 마음이 짠했다.
책꽂이 아래, 내 책상 유리바닥 위에 보인다. 작은 몸을 더욱 작게 웅크리고 있는 갈색 덩어리. 네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마른 멸치같이 웅크린채 책꽂이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그새 죽었단 말이야? 작은 달팽이의 의식불명. 너는 너무 약하구나, 너를 어디론가 빨리 보내줬어야했는데.
하마 죽지 않았으리라. 화단 쪽의 창문을 열었다. 내 손바닥 위의 작은 갈색 덩어리는 겨울화단으로 흘려 보내졌다. 그래도 그 곳은 약간의 풀더미가 있으니까. 네 몸이 죽어가더라도 네 갈 곳은 그 곳이겠지. 나는 겨울 창문을 닫았다. 저 귤은 까먹지 않겠다, 그냥.
2. 집으로 돌아와, 지금 탁상 달력을 들여다보니, 이틀 전에 보름달이 떴고, 오늘은 즈믄달이 되어 11월의 마지막 날을 안고 있다.
마지막이라는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12월의 첫 날의 시작'이 되겠지. 늘 그렇듯이 마지막과 시작의 경계에서 내 심정은 불안해진다.
이유는 있겠지만, 굳이 필설하고 싶지 않다.
3. 그 곳으로 어제 초저녁에 보낸 것과 오늘 이른 아침에 보낸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건대 전자는 측은지심.
후자는, 일반적인 상식과 평범함을 뛰어넘는 1%의 인간임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천한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발로는 타인이 원인이 아니라 결국 내가 원인이고 궁극은 나를 위함이다.
어제와 오늘, 내게 왜 이러는거지? 라고 의아해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그랬습니다라고.
바쁨에 마저 챙기지 못했음이 유감이라하겠습니다라고 말하겠지.
4. 어제였던가, 목요일인가. 헷갈려. 오후 5시 경에서 9시 5분까지의 그 얄궂은 체험, 마지막엔 과유불급이었다.
그것은 너무 황당해서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데, 나는 참 겁도 없다. 어쩌자고.
그 시간 그 곳의 삿됨이 과하고 징그러워서 어떻게든 떨쳐내야만 했는데, 어떤 이유, 그 이유때문에 어쩔 도리없이 아침을 이대로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 와중에 내 양쪽 호주머니 속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들, 그 소리때문에 그녀는 스스로도 개운하지 못했으리라.
우스꽝스러운 삼류영화같은, 가소롭기도하고 웃기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불쾌하고 찝찝하기 짝이 없다.
지금 나열하는 4번, 4번 글줄은 이 순간 이후 두 번 다시 들여다 보지 말고 생각하지도 말자.
이조차도 위와 아래, 안팎의 온가지 경험들에 포함되어 어떻게든 한 장 한 장의 벽돌로 쌓이는것이므로.
이 더티한 기분을 참아내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 그러니까 가야지. 깨끗하게 하고 싶다.
5. 한 권을 주기 위해서, 한 권을 받아오기 위해서라지만, 삼주 이후를 기다리지 못하겠다.
이유는 말못하지만, 그래도 안다, 그래서 간다.
6. 그곳을 드라이브해보고 싶어요라는 말때문에 그 곳을 가르쳐줄 수 있었다. 거두절미한 문장, 단 한 줄에.
절대불가 영역의 견고함이, 흙벽의 흙가루처럼 슬슬 떨어진다.
7. 오늘, 부츠 선물. 내 낯색. 이를 어쩌면 좋아요.
그리고 자주색 레이스어깨숄, 화장품, 책, 종이의 편지들, 시골에서 온 음식들, 지혜의 초컬릿, 좋은 지인들, 영화, 집, 두 배, 그림이 팔리고 등.
8. 좀 전, 늦은 밤에 카톡이 오길래,
- 잘 계시는지요, 비가 오네요-그래요? 서울이세요?-인천공항-으마, 출국하세요?-영국에서 오는 조카 기다립니다-아항-이 아이요(사진), 건강하시죠, 내일 내려갑니다
- 저는 내일 아침에 서울가서 모레 옵니다만, 아, 매력적이네요, 같이 오나봐요-그래요, 일욜저나주세요, 조카애는 사진을 잘 하지요, 런던에 있는 아이, 동생-네에 반가운 마음이네요, 이뻐서 좋습니다, 그래요. 일요일 저녁 이후 늦게 도착해도 전화드릴께요, 사진? 네에 ^^. 아, 네에- 네 사진 잘하지요 장비가 많아요 이 아이는, 연말에 몰타가지요, 지중해, 그림도 잘합니다. - 근처에 사진출사 즐기는 중년들이 많은데, 장비...네에, 오오 그래요? - 시집표지 많이 그렸습니다-재밌는 가족들이네요, 네에, 시집표지
- 색감이 아주 뛰어 나지요-몰디브엔 누가 간다구요?-영화연출 공부하고 싶다네요-사진작품한 거 보고 싶네요-이 아이가 몰타에 가요-네에-근데 서울은 출장입니까- 참, 저는 단편영화단 창립 멤버되었어요, 아뇨 바람 쐬러요- 몇 시에 오나요, 난 오후에나 갈까하고요-아마도 8시정도, 밤 8시-제가 있는 시간이면 식사 같이 할건데, 밤에요,그선생이랑요, 아님 혼자 - 혼자여요. 서울에 친구만나서 함께 보내기로- 기 잘하는 선생 도곡동에 있는데 머리길어요 키도 비슷하데요, 미국에서 왔어요, 재미 소설가가 소개- 기? - 네 - 아, 네에 - 그 사람 만나니 일이 잘 풀려서- 에?- 참 신기했어요-으마?-일이 잘 풀린다구요,기회되면 소개시켜줄께요, 정말 신기해요-기..하는 분이 어떻게 하기에 신기하다고 하세요? 황*님하고 좀 다른 방법인가요? - 나성소설가가 소개했는데 그 분만나고 나면 책계약이 되더라고요 - 아아. ^^ - 곽*리라고 잡지에 소설연재하는 분이 소개했음 - 그래요 도곡동에서...네에, 살고계신가보죠 - 나보고 꼭 만나라고 하여 재미로 만났는데 미국에서는 유명하다고 - 신기하고 불가사의한가봐요, 으마나, 복채도 내나요? - 국내에서도 빵빵한 사람만 온다고 재벌 기업인 정치, 등등 돈 안내죠 - 오호, 네에 - 가난한 출판사가 몬 돈이래, 고대 국문과 - 언능 뵙고 싶네요, 아...네에. 여전히 귀여우시네요, 아..네에 - 중부대교수도하고 - 직업이 무엇인데요? - 아무튼 곽*리선생이 기를 받으면 풀린다고 해서 - ㅎㅎㅎㅎ, 네에 - 잘 만난거 같아요 - 기를 받아야 하는군아, ㅎㅎ - 저보고 처음 볼때 인상좋다고 ㅋㅋㅋ - 네, ㅋㅋ - 난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 아이~ 재밌다. - 근데 나보고 귀 잘생겼다고 하던데요. ㅋ - 끄덕, 또? - 그러면서 잘될거라고, ㅎ - 긋 - 그랬지요 - 귀 잘생기면 다아 잘 되나요.^^ - 근데 카톡에 그 사람 얼굴만 보아도 일기가 전달되어 일이 풀린다고 *리 선생이 말하던데 - 난 귀 안잘생겼어요 ㅠㅠ - 정말인거 같아요 - 으므나 ^^, 세상에, 미치겠다,ㅎㅎㅎ - 난 귀 잘생겼다소리 마니들었어요, 재미있지요 - 끄덕 - 부처귀같다는 소리 마니 들었음 ㅋㅋㅋ 웃겨서 - 끄덕 - 시간되시면 한번 보시던지요 - 좋으시겠어요, 아 그러고 싶네요 - 기 그쪽에선 유명하다고 하데요 - 네에, 연결해주시면 뵐 수 있겠지요 - 미국사람 아기이유식 거버 알지요 -네 - 이유식 재벌 - 알죠 - 그 사람도 기치료 받았다고 하고 - 끄덕 - 스님들도 - 네 - 간다고하네요 - 그렇군요 - 근데 잼있어요 - ^^ - 난 돈은 안주고 홍시주었음, 억시기 좋아하던데 - ㅎㅎㅎㅎㅎ - 어릴적 묵고 - 난 머를 드려야하나 - 처음 묵는다고, 주긴 뭘 주어요- 세상에 난 그럼 그림드릴께요 - 그냥가서 보면되지 - ^^ - 참 너그럽게 생기신분 - 그렇군요 - 조은사람이더라구요 - 네에 - 난 돈없는 줄아는데 - 주변에 좋은 사람있음은 큰 은혜로움이죠, 네에 - 아무튼 재미나게 보내시어용, 뿅 - 네.안녕히.
/ 이렇게 자판 두드리면서 내 정신의 난만함을 희석하고 있다. 이로써 오늘 마무리는 즐거워지고. ( 최사장님, 카톡 이거 문제되면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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